밸런스 게임

밸런스 게임을 들어 보셨나요? 아마도 50대 이상이신 회원분들은 예능인 이휘재 씨가 90년대 안방극장을 강타했던 ‘인생극장, 그래 결정했어’를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예능에서 주인공은 누구한테나 있음 직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 끝에 ”그래 결정했어! “를 외칩니다.

90년대가 ‘그래, 결정했어’라면 2020년대는 밸런스 게임입니다.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둘 다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숨겨진 내면을 드러내려는 것이 이 게임의 의도입니다. 이 밸런스 게임이 최근 대선 바람을 타고 방송에도 떴군요.

네트웍 방송의 코미디프로그램인 ‘SNL코리아’에서는 대통령 선거 시즌을 맞이하여 대선 후보를 초청하여 밸런스 게임을 펼쳤습니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아수라’ 중의 어느 것을 보겠냐는 선택이, 윤석열 후보에게는 대통령 되기와 아내와의 결혼 중의 선택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예능이기에 SNL코리아의 밸런스 게임은 웃는 것이 목적이니 어떤 선택을 했건 심각히 볼 것은 없습니다.

선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으로 겪는 일입니다. 하나를 선택하고 나중에 다른 것을 선택하거나, 미룰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또한 최종적인 것처럼 선택을 강요받고는 합니다. 대통령 선거도 그렇습니다. 여러 후보 중에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 후보가 다 마음에 들면 좋지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좋은 점과 싫은 점이 혼재한 가운데, 어쨌든 한 후보를 선택해야 합니다(나로서는 기권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우리로서는 누군가 선택합니다). 모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의사도 존중해서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만, 밸런스 게임의 역사는 그런 경우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밸런스 게임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이 다 밸런스 게임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피자와 빈대떡의 선택은 밸런스 게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큰 조각 말고 작은 조각을 사서 두 개를 조합하면 되거든요. 이런 면에서 중국집의 메뉴 개발은 본받을 만합니다. 짜장면과 짬뽕의 선택 갈등을 없애는 반반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갈등의 소재가 있는 이슈를 시민들이 숙의하여 해결하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방법인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를 오랫동안 연구한 스탠포드 대학의 피쉬킨(Fishkin) 교수는 미국 텍사스 전력회사의 재생에너지 도입 사례를 공론조사의 좋은 사례로로 꼽습니다. 지금은 재생에너지가 확장 일로에 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재생에너지는 매우 비싸고 전력회사가 도입을 주저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나 풍부한 석유와 가스로 화력발전 일색인 텍사스에서 낯설고 비싼 재생에너지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공론조사가 성공적인 결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흑백의 선택이 아니라, 조합의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을 찾고 그에 걸맞게 에너지를 조합하는 것이 가능한 게임이었던 것이지요.

대통령 선거는 밸런스 게임입니다. 모 아니면 도이고 개나 걸, 윷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건 에너지 문제를 밸런스 게임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에너지 이슈는 조합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재생이든, 원자력이든, 100% 혼자서 탄소중립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3월 9일의 밸런스 게임이 우리의 에너지 문제에는 이어지지 않도록 3월 9일의 주인공이 이제는 탈원전을 종식하고 슬기로운 조합을 찾자고 나서 주기를 바랍니다.



한국원자력학회 제34대 학회장 정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