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제3막의 출발점에서 ...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 관리사업의 시작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폐물 관리시설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제1막이다. 방폐물의 준위(準位)를 구분하지 않고 추진했던 시도였기에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제1막이라도 해도 틀림이 없다.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2003년 전북 부안에서의 실패를 끝으로 제1막이 끝났다. 제2막은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위원회는 중저준위와 고준위 처분시설을 분리하여 추진하기로 하였고, 정부는 2013년 고준위 방폐물 관리 국가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공론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공론화를 거쳐 정부의 1차 기본계획이 2016년에 수립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의 마련은 좀처럼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9년 후, 지난 2025년 2월 27일 오랜 산고 끝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제2막은 국가정책과 법적 근거 마련이라는 성과를 거두고 막을 내렸다.

특별법의 제정은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방폐물 관리사업은 관리시설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부지를 확보하는 것에 비할 수 없어도 이를 위한 절차를 합의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특별법은 정확히 말해 부지선정을 위한 절차법이다. 이 법이 밝힌 원칙과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 이제 우보천리(牛步千里)의 교훈을 성취해야 한다. 특별법의 제정은 또한 원자력산업의 관리체계가 전(全)주기적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원자력산업의 선행(先行)에 이어 드디어 후행(後行)의 관리체계가 정립되어 생태적 관점에서 원자력산업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제3막의 출발점에 서 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은 이를 둘러싼 주체들 각자의 역할수행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먼저, 정부는 국가정책의 절차적 정당성 제고를 위한 정책 설계와 집행에 주력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9월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하위 법령의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업 추진의 기본 룰(rule)을 만드는 과정인 만큼 부지선정 절차를 특별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콘트롤타워를 담당하게 될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이하 고준위위원회)는 지혜로운 갈등조정자의 소임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예상치 못한 갈등은 사업 추진 전(全)과정에서 발생한다. 이때 위원회는 특별법이 밝힌 민주성, 책임성, 투명성의 원칙 아래에 모든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

둘째,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은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전담사업자로서 사업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전담사업자의 외형적 지위는 법률이 부여하나 실질적 지위는 이해관계자가 부여하는 것이다. KORAD는 특별법 제정 직후인 지난 4월 초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 추진전략’을 발표하며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 HUB 기관’이라는 사업 비전을 선포했다. 수레바퀴를 서로 지탱하며 굴러가게 하는 힘은 HUB에서 나온다. KORAD를 통해 연결된 기술개발 분야, 인력양성 분야, 설비 및 기자재생산 분야 등 모든 이해관계자는 KORAD의 지원을 통해 각자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그 성과물을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KORAD는 국민과 미래세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사업의 효율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업의 공사(公私) 영역을 막론하고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이란 있을 수 없다.

셋째, 고준위 방폐물 기술개발 분야는 기술개발의 성과가 사업 일정에 실질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 중인 기술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사용될지 모를 순수 기술이 아니라 고준위 사업을 추진할 때 부지평가, 안전성평가, 시설설계 등에 활용해야 하는 기술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의 관점에서 기술개발 과제 기획 및 평가가 필요하며, 개별 기술개발 과제의 수행은 기획 의도에 수렴할 필요가 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의 제3막이 이제 올랐다. 필자는 제3막이 ‘처분시설 부지확보’라는 성과로 막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며 그 시기는 2038년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13년에 불과한 시간은 부지확보에 이미 착수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도전적인 목표다. 더구나 OECD 30개 국가 중 세 번째로 갈등지수가 높은 우리나라 상황은 이 목표의 달성전망을 어둡게 한다. 오는 9월 고준위위원회는 설립 직후부터 ‘부지확보’라는 쉽지 않은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고준위위원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원자력계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   조성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