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원자력의 미래
– 과학과 시스템으로 만들어가야

애국하는 마음으로 수십년을 밤낮없이 달려 왔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순식간에 비도덕적인 마피아 집단으로 매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근간인 에너지 산업을 통째로 뒤흔들려고 하는데, 포퓰리즘에 기대어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한 일에 과학적인 근거가 있을 수가 없으니,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미리 정해 놓은 답을 향해 공공기관과 규제를 동원한 일방적인 조치가 난무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랬던 탈원전의 시기가 지나고 이제 국가 성장의 원동력으로서 원자력의 활약에 기대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탄소중립 에너지 활용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 지면서, 동시에 원자력 없이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원전 발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국처럼 성장하는 경제를 위한 전력생산과 공해로 인한 거주 환경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라에서 대거 원자력을 도입하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선택이겠고,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전력 다소비 기업이 미래 성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직접 구매하고자 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겠습니다. 새롭게 창업한 원자력 기업의 숫자는 이제 셀 수도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을 목전에 두고도, 앞으로 또 정치적인 이유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의 우리나라 원자력 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일시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듭니다. 우리 원자력계는 지금까지 가압경수로를 개량하고, 대형원전을 매년 건설하고, 지어진 원전을 운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전체 산업계와 학계가 구조적으로 전방과 후방이 길게 이어졌으나 가느다란 모양이 되어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 있는 모양새입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학회 회원들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입학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전공을 정하는 카이스트와 유니스트의 원자력공학과 지원자가 급감한 이후에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떤 정권에서 어떤 정책을 펼지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높으니 자신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젊은 인재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선택인 것이겠지요. 어떻게 이런 불확실성을 타개하고 예측가능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리 원자력계에서 다시 한번 돌아볼 시기입니다. 어쩌면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홍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어 온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유의 양당제로 인해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부침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천연자원도 풍부해서 새로운 유전과 가스전이 발견되면 원자력의 상대적 경제성도 들쭉 날쭉하게 되는 상황인 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원자력 산업의 시스템을 유지발전 시켜 온 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높은 인건비로 인해 공업기반이 약화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개별 기업의 부침은 도처에 있었습니다만, 국가의 시스템은 건재해서 요즘의 새로운 원자력 기업 붐을 일으키는 기반이 되었으니까요. 근래 미국의 원전 운영 실적을 보면 이런 시스템의 힘이 실감이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들을 가지고 최고의 이용율을 달성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안전성도 높습니다. 여러 옵션을 가진 다수의 신형원전들이 개발 중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진화하고 더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만든 것인데, 위험도정보기반 규제인 10 CFR 53도입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원자력을 전공으로 선택할 때에 핵융합 등 새로운 에너지원이 나타나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없어 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만, 국가의 원자력 시스템이 어느날 뒤집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대개는 원자력을 통해 미래 에너지 이슈에 대응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선택을 합니다. 과학을 이해하고 신뢰하는 것이 이런 안정적 기반을 만드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것이 있으면 과학을 통해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점을 구체적으로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의 과정을 그냥 일회성으로 흘려 보내지 않고 시스템에다 꾸준히 축적해 넣었고, 이것이 흔들리지 않는 저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안정성을 위한 두개의 키워드는 과학과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걸 실제로 해 내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바닥부터 과학적 시스템을 만들어 다지기 보다는 중도진입 전략을 통해 법제도, 안전규제, 설계 및 제작기술의 많은 것을 외국에서 들여와서 우리 실정에 맞도록 조합하여 사용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덜 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원전 작업자가 사용한 장갑이나 장화 등으로 이루어진 저준위 폐기물이 폭발한다고 TV토론회에서 주장하던 어떤 교수가 지금도 신문에 정기 기고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자꾸 생기는 것은 그런 논의가 과학적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말싸움의 장에서 벌어 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과학을 존중하는 것도 사회 인프라의 한 부분인데, 이런 사회적인 기반은 정말로 긴 시간 노력을 기울여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할 것은 과학밖에 없지 않나 합니다.

한편 지금 당장 시작하여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가동 중인 26기의 원전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데, 이 과정에서는 과학에 기반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굳이 원자력 규제 기관이 허가하는 것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운영자인 한수원과 관련 기업들이 판단을 내릴 기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로운 원자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데, 마찬가지로 축적된 과학에 기반한 판단 기준이 필요 합니다. 과학적이지 않으면 확신을 가질 수 없고 그러면 예전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위험도정보기반으로 최신의 과학지식을 시스템 형태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 한수원이 제안한 스마트 넷제로 시티(SSNC)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도 경제성도 있는 획기적인 에너지 모델인데, 이것은 단순한 소형원자로 개발 수준을 넘어서는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런 제안을 수용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의사결정은 차치하고라도 원자력계 내부에서도 규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외국의 예를 보면 지역난방에 원자력을 사용하려는 핀란드가 이런 원자력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규제시스템을 이제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틀에 박힌 규정집에 의존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새로운 이슈는 그 규정집이 만들어질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혀 고려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십년 전에 증기기관차를 연구해서 만든 과학의 틀을 그대로 최신 승용차나 버스에 적용하게 되면 그 산업계는 경쟁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투명한 시스템을 계속 더 강화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미국은 우방국이기도 하지만 원자력 시장에서는 경쟁국이기도 합니다. 선진국들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제 진짜 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강현국 (미국 렌슬러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