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그러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요구도 함께 커져왔습니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출범하였습니다. 원안위 출범 이전에는 원자력의 이용과 진흥이 우선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출범 이후에는 안전이라는 가치가 함께 존중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지난 10년간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각종 안전 관련 제도와 시스템도 확충되었습니다.

2020년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이제는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원자력 안전이 이용·진흥과 동 떨어진 것이 아닌, 안전·이용·진흥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이 전제되어야만 원자력 이용활동이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관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전에 관한 사회적·국민적 신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과거 원전 부품 시험성적 위조사건 등의 사례를 돌이켜 보면 안전을 소홀히 했을 때 얼마나 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볼 때 안전에 들이는 노력이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모하는 비용이 아니라, 원자력의 성숙한 이용과 발전을 위한 미래에의 투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을 위해 산·학·연 스스로의 자발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며, 원안위도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원안위는 산업계 스스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문화를 정착하고 안전에 보다 더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고, 필요하다면 관련 기업과 협의체 등을 구성하여 안전성 향상을 위한 컨설팅 등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원자력 안전역량을 제고할 수 있도록 원자력 관련 대학의 학과에 안전규제 과정 개설을 지원하고, 방사선작업종사자 등에게 필요한 맞춤형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겠습니다. 아울러, 산업계·학계 등이 필요로 하는 R&D 지원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건강하고 국민이 신뢰하는 원자력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규제기관 뿐 아니라 산·학·연 등 다양한 주체들이 그 동안 안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되돌아보고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자력이 국민 안심과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엄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