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위의 원자력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정동욱 교수


2023년 10월 31일, 한수원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 입찰서를 제출했다. 로이터 통신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를 두고 프랑스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웨스팅하우스가 도전장을 냈다는 소식을 전한다. 특히 유럽에 처음 진출하는 한수원과 팀코리아는 큰 주목을 받았다.



2024년 7월 17일, 체코 당국은 한수원을 두코바니 5,6호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발표를 한다. 거의 모든 신문이 1면 헤드라인으로 소식을 전했다. UAE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의 쾌거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2024년 10월 30일, 프랑스 EDF가 체코의 반독점 감시 당국에 한국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제기한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두코바니 원전 계약 협상을 일시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코바니 사업 수주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2024년 10월 31일, EDF의 이의 제기를 반독점 감시당국이 기각했다는 뉴스가 떴다. 계약 협상을 일시 보류한다는 발표 하루 만에 기각한다는 뉴스는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본 계약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2025년 1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수출통제에 대한 MOU를 맺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체코 원전 계약에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에 따른 동의를 받는 것은 중요한 이슈였다. 이어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에 원전 수출을 위한 협력협정이 맺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는 체코 원전 본계약을 확실하게 하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원전 시장에 한미 협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됐다.



2025년 5월 7일, 드디어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본계약을 맺는 세레머니를 체코 현지에서 갖기로 했다. 그런데 계약 서명식 바로 전날 EDF가 체코 법원에 계약 중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 받아들여졌다. 법원의 결정이 날 때까지 계약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불안이 뉴스를 타고 흘렀다.




2025년 6월 4일, 체코 법원이 EDF의 이의제기를 기각했다는 소식과 동시에 체코는 두코바니 원전 건설계약을 즉각 체결 완료했다. 비로소 본 계약이 체결되고 그간의 모든 논란을 잠재웠다. 다만 EU에 프랑스가 제소하고 논란이 다시 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있었다.



2025년 8월 18일, 체코 원전 수주 본 계약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원전 수출 협력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론을 타고 알려졌다. 노예계약이라는 비판이 줄지었다. 원천기술이 없다는 질책과 그간에 원자력계가 주장한 기술자립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소리도 나왔다. 미국의 원전 확대 정책에 올라탈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미국에 원전을 짓기 위해 합작회사(Joint Venture) 방식의 협력을 구상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무모한 모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칼럼에 웨스팅하우스에 발목 잡힌 우리 원전 기술의 한계가 381cm라는 숫자로 제시됐다.

"우리 원자력 업계는 그간 기술 자립을 이뤘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자기네 원천 기술을 갖다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원천 기술이란 특허와는 다른 개념으로 일종의 지식재산권이라고 한다. 우리 원전은 웨스팅하우스 원전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형태부터 같은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봉 길이는 381cm이다. 웨스팅하우스의 과거 표준 노형 연료봉 길이(150인치)와 같다. 다르게 디자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려면 복잡한 파생적 수정과 검증 테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웨스팅하우스의 디자인 기본 계수를 채택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380cm도, 385cm도 아니고 왜 하필 381cm인가"라고 파고들었다. 그런 사소한 요소들이 한수원 목덜미를 잡았다"




한수원-웨스팅하우스 간의 이슈는 현재 진행형이다. 성공할지, 무산될지, 좋을지, 나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체코 원전 수주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느낌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써도 될 것이다. 기대와 실망, 반전과 재반전의 연속인 체코 원전 수출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필자에게 조금 혼란스러운 것은 드라마의 결말로 앞으로 원자력계가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기술자립을 바탕으로 세계 5대 원자력 수출국으로서 국민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원자력계의 소망이라면 소망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지, 그렇지 못 할지는 아마도, 학회 회원들의 손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학회는 이 체코 드라마를 분석해야 한다. 우리가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어떻게 준비했고, 무엇이 장애 요소였는지,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 그 과정에서 산업계, 연구계, 관계에서 어떤 노력과 간과한 요소가 있었는지 알아야 다음 나아갈 길을 볼 수 있다. 학회는 이 드라마에서 잘못했거나 실수한 것이 있다면 (사랑의)매 또한 들어야 한다. 이는 학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산업은 이른바 ‘중간진입’ 전략으로 압축성장을 해왔다. 원천기술을 만들 시간도 자원도 없었다. 원자력뿐 아니라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해외 기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을 키웠다. 원천기술이 없다고 비난받는 것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같은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시작해 독립적 지위를 얻은 프랑스도 있다. 후발주자의 원천 기술은 결국 선두 주자와의 계약으로 얻어진다면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기술개발 방향은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도 매년 수천억을 쓰면서 수행하는 연구들이 미국이 개발한 기술의 모방 연구는 아닌지, 막상 상업화를 한다면 ‘원천 기술’에 발목잡힐 수 있는 요인은 없을지, 돌아봐야 한다. 원자력 산업과 연구의 주변에 '381cm'라는 유리벽이 있는 것을 못 보고 있는지 둘러봐야 한다.

학회 회원 여러분들은 원자력이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를 같이 탄 동승자이다. 흥미진진한 이 롤러코스터에 탄 것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고 싶다.

첫째, 안전벨트를 단단히 묶고, 안전바를 꽉 잡아야 한다. 안전을 놓치면 중상 내지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둘째,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 무섭다고 눈 감으면 안 된다. 눈을 감는다고 날아 오는 화살이 멈추지 않는다.
셋째,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린다면 몰라도 내리지 않고 끝까지 타겠다면 필자가 해주고 싶은 말은 '즐겨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그래야 이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