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국내에서 방사선 의학이 시작되고 성장해온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60년대부터 급격히 늘어난 난치병인 암을 방사선으로 치료하기 위해 1963년 서울 정동에 20병상, 2개 연구실을 갖춘 방사선의학연구소가 설치됐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암은 결핵을 누르고 국내 사망원인 1위로 올라섰다. 의학원은 1973년 원자력병원으로 개편된 이후 검진차량을 도입, 전국적인 부인암 조기 검진사업을 펼쳤고 ‘코발트 스쿨’이라는 연수과정을 개설해 전국 27개 종합병원에 방사선 암 치료 기술을 전파하기도 했다. 당시 전국의 암 환자들에게 “서울에 가면 원자력으로 암을 고치는 병원이 있다”는 입소문과 함께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기사가 일간지에 실릴 정도로 방사선 암 치료는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요즘의 우리에게 의료용 방사선은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한국의 방사선 의학은 기존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병원은 과거 진료 중심에서 최근에는 바이오의료 분야의 R&D 혁신기지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암 진료를 넘어 빅데이터 기반의 AI진단, 스마트병원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이 될 첨단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성과들이 사업화로 이어지는 플랫폼
첨단 의학은 다양한 과학기술 성과들과 융합 연구가 이루어질 때 그 빛을 발한다.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연구 역량과 인프라가 집적돼 있어 외부 R&D 수요와 원활한 연계가 이루어진다면 기존의 훌륭한 연구 성과물들이 국민들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방사선 의학 인프라를 민간 기업과 공유하며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물이 산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R&D 플랫폼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방사성의약품 분야에서는 이미 이 같은 노력이 가시화 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국가RI신약센터는 가속질량분석기(AMS)를 비롯한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활용하는 신약개발 전문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으며, 신약개발 과정 중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검증기술을 적용하여 의약품의 합성‧영상평가‧독성평가 및 전임상 시험, 임상 연구까지 연계한 원스톱 지원 체계를 신약개발 기관에 제공하여 신약개발 기간 단축 및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테스트 베드를 통해 만나는 과학과 의학
테스트 베드는 새로운 기술 · 제품 · 서비스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스템, 설비를 말한다. 의생명분야의 신 의료기술들이 실용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하는 공익적인 성격의 임상시험센터의 기능도 필수적이다. 신기술을 실증하는 테스트 베드 구현은 연구의 신속한 임상적용을 위한 규제 대응 전문가 양성, 실용화지원센터 고도화, 난치성 질환의 치료법과 신약의 임상시험 수행 등을 들 수 있다.

표적치료제, 항체신약, 세포치료, 면역치료, 유전자가위 이용 유전치료, 방사성의약품 신약 등 새로운 의료기술들의 실용화 성과는 누구보다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다. 의료·바이오 분야 R&D의 전주기 실용화연구를 지원하고 성과물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하여 미래혁신기술의 실용화를 앞당기는 것.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방사선 의학의 미래 청사진이 될 것이다.

방사선 의학은 첨단 과학을 의학에 접목시키며 한국을 의료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앞장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지난 반세기의 성과를 토대로 방사선 의학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실현해 나갈 때다. 양적 성장과 단기적 성과 추구에서 벗어나 공공적 기능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기여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한국원자력학원 원장 김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