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얼마 전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자력 기술의 해외유출 사건은 기술자산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또한 9월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 전주기 수출활성화 방안’은 이전의 대형 원전 중심의 원전 수출 전략을 운영·정비·해체 등 전주기로 확대한다는 내용으로 원자력 분야도 원자력발전소 설계·제작·건설 등 실물 중심에서 서비스 및 정보·지식 등 무형재로의 탈산업화 전환과정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탈산업화 시대에 원자력계는 특히 원자력 연구, 개발, 이용에 있어 무형재에 대해 매우 엄격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원자력의 특성상 무분별한 해외 수출 시 기술이 핵무기와 같은 대량파괴무기의 개발, 생산, 사용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통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이를 준수해야만 한다. 국제사회는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나 NSG(Nuclear Suppliers Group)와 같은 국제 레짐을 통해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도록 담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원자력 기술의 해외 이전과 관련 기술 보유자의 해외 취업도 그 대상이 된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간에 국제 수출통제 체제를 위반하면 국제적 제재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국제 제재를 받을 경우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 수출통제는 1974년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체제가 출범하면서 시작되어, 국가간 전략물자·기술의 거래를 통해 전략물자를 확보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는 1995년 원자력공급국그룹에 가입하여 국제 공동의 수출통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지식기반 정보산업과 통신망 발달은 국가행위자 뿐만 아니라 테러집단으로의 기술 유출 또는 이전(移轉)의 가능성을 더욱 높게 만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고자 국제사회는 전략물자·기술의 이전을 보다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해 국제레짐을 강화했다. 재래식무기를 통제하는 바세나르체제(WA)는 2006년, 핵무기를 통제하는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은 2009년 각각 전략기술 통제에 대한 강화된 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간하였다. 우리나라는 2014년 대외무역법 개정을 통해 사람 간의 기술이전의 통제와 관련하여 ∆정보통신망을 통한 이전 (예. 전화, 팩스, 이메일 등), ∆구두 및 행위를 통한 이전 (예. 교육, 훈련, 실연 등), ∆정보처리장치를 통한 이전 (예. 종이, 필름, 자기디스크, 광디스크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법령 개정에 따라 전략기술의 수출통제 제도에 대한 많은 연구자, 기업인들의 각별한 인식이 요구된다. 외국인을 채용하거나 국외 기관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비공개 학회 참석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전략기술 수출통제 제도의 정착과 관련자 인식제고를 위해 교육·상담 등 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으며, 효과적인 기술통제를 위해 국내 전략물자 취급 기업 및 연구정보 수집·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전략기술 수출통제의 첫 단계는 허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다. 개인, 연구자, 기업인들은 스스로 전략기술인지, 외국인·해외로 이전하는지 등을 따져 원자력 기술을 이전하기 전에 반드시 자체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판단이 어려울 경우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원자력통제기술원에 문의하면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원자력 기술의 연구, 설계, 운영단계에서 전략물자·기술의 수출통제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수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하여 개발된 원자력기술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거나 이로 인해 막대한 국가적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제는 원자력 기술개발과 원자력 이용의 안전 이슈를 넘어 비확산을 위한 수출통제레짐의 준수가 국제경쟁력과 경제성을 담보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야 할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