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핵주기 화학 단기 인재육성 교육의 17년 여정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흐른다. 20년 전, 일본 센다이에서 도호쿠대학 사토 노부아키 교수와 저녁을 함께 하던 때가 떠오른다. 핵주기 화학 실험 교육에 대해 논의하던 중, 문득 도호쿠대학의 넓고 잘 정비된 실험 시설에서 한국 학생들을 단기 교육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에 유난히 헌신적인 사토 교수는 이 제안에 기꺼이 동의하며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뜻을 모았다. 방사선을 방출하는 핵물질을 직접 다루는 실험 교육은 사실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현장에서 교육을 직접 담당하고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토 교수에게는 매우 번거롭고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동의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완성해 준 사토 교수에게 지금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마침내 결실을 맺어, 2008년 '일본 도호쿠대학 핵주기 관련 실험 및 원자력 시설 견학'이라는 사업명으로 연구재단의 연구기반확충 인력양성 사업에 선정되었다. 이후 수년간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본 실험 교육이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한국원자력협력재단 주관 아래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도호쿠대학 실험 교육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지금까지 교육이 순조롭게 지속되어 왔으며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17년이 지난 지금,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수료생은 총 231명에 달한다. 또한 당시 교육을 받았던 수료생 중 3명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현재 원자력 분야의 젊은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제 이들이 거쳐 간 실험교육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자.
프로그램에 선발된 학생들은 도호쿠대학 현지에서 실제 방사성 핵물질을 직접 다루어야 하므로, 일본에서의 방사선 작업을 위해 먼저 방사선작업종사자 교육을 필수로 이수한다. 이어 일본에서의 본 실험 교육이 더욱 깊이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 내에서 철저한 사전 실습과 교육을 실시한다. 이 사전 교육 과정에서는 X선 회절(XRD), 열중량 분석법(TGA), 용매 추출법 원리 등 핵주기 관련 실험의 기초 이론을 탄탄히 다진다. 이와 함께 도호쿠대학에서 수행할 실험의 전반적인 개요를 파악하고, 방사선 실험실 안전 수칙을 미리 숙지하게 한다. 특히, 사토 교수는 매년 한 번도 빠짐없이 한국에서 열리는 이 사전 교육에 직접 참석하여 학생들을 지도하며, 전체 교육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일본 센다이에 위치한 도호쿠대학에 도착한 학생들은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핵주기 화학 실험 교육에 돌입한다. 실험은 크게 산화우라늄 고체 특성 평가와 우라늄 용매 추출,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집중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체 학생을 4개 조로 나누고, 각 조가 동시에 두 실험을 교차로 번갈아 수행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 내용 역시 해를 거듭하며 발전해 오고 있다. 초기 고체 화학 실험은 산화우라늄을 질산에 용해하고 ADU(중우라네이트 암모늄) 침전 생성 상태에서 우라늄을 회수하는 기초적인 실험이었지만, 꾸준한 개선을 거쳐, 현재는 UO₂ 고용체(doped urania)를 합성하고 그 구조적 특성을 평가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용매 추출 실험도 초창기에는 모사 핵분열생성물과 우라늄 혼합 용액에서 유기 용매(TBP)를 이용해 우라늄의 분리 거동을 확인하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너 액티나이드(MA) 원소까지 포함된 복잡한 혼합 용액에서 분리 실험을 수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실험 일정이 모두 끝난 후 하루의 휴식기를 갖고, 각 조별로 수행한 실험 결과에 대한 발표 평가를 진행한다. 이때 평가 과정에서 던질 도전적인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미리 제시하여, 그들이 얻은 실험 데이터를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고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도호쿠대와 한국 측 교수진 5명 이상이 배석한 자리에서 진행되는 조별 발표는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긴장감과 부담감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학생들의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자신들이 도출한 결과와 그 학문적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을 역력히 찾아볼 수 있다.
팽팽했던 발표 평가가 무사히 끝나고 나면, 참여 교수진과 학생들, 그리고 며칠간 실험실에서 동고동락하며 도움을 준 도호쿠대 대학원생들이 다 함께 저녁 만찬을 즐기며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돈독히 다진다. 이제 실험을 무사히 마친 학생들은 일본 원자력시설을 견학하게 된다.

일본 원자력시설 견학
일본 원자력 시설 견학 프로그램은 매회 상황에 따라 일정이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지만, 크게 세 가지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JAEA 오아라이 연구소, 둘째는 도카이무라에 위치한 J-PARC 중심의 연구 시설, 마지막 셋째는 후쿠시마 인근의 원전 사고 제염 및 폐로 관련 시설들이다. 구체적인 견학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JAEA 오아라이 연구소에 방문하여 고속증식로 '조요(JOYO)'와 고온가스로 'HTTR'을 방문하여 국내에 없는 차세대 원자로 기술의 실체를 직접 확인.
2) 도카이무라 J-PARC 시설: JAEA 도카이 연구소 내 JPDR 폐로 관련 시설을 둘러보고, 이곳에 위치한 대형 양성자 가속기와 부속연구시설(중성자 빔포트 23개, 뮤온 빔포트 4개)을 견학.
3) 후쿠시마 인근 제염 및 폐로 연구 시설 :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의 제염과 폐로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오쿠마 JAEA 분석연구센터 (ALPS처리수 제3자 분석, 핵연료 데브리 연구). 원전사고의 피해 지역을 부흥시키기 위한CREVA 산업교류시설, 도쿄전력(TEPCO) 폐로자료관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경위, 대응과정, 폐로현황 홍보)을 견학.
초기 참여 기업의 돌연한 취소 결정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HTTR은 일본정부의 뚝심있는 추진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이제는 950℃에 달하는 고온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최근에는 제어봉을 삽입하지 않고 냉각 가스의 강제주입이 없는 극한의 조건에서도 원자로가 스스로 안전을 유지할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입증해 냈다. 현재 이곳에는 수소 생산 시설을 설치 중인데, 아마 수년 내로 HTTR의 고온가스를 이용하여 수소가 생산되는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견학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TEPCO 폐로자료관은 원자력 시설에서 인간의 조그마한 방심이 얼마나 참혹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고 당사자인 도쿄전력이 자신들의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과 그간의 개선 사항들을 투명하게 전시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원자력 안전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한번 각성시키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실습교육 프로그램과 함께한 17년의 세월은 참으로 빨리 지나간다. 도호쿠대학의 사토 교수와 나 역시 어느덧 정년을 맞아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간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학생은 전국 20개 대학, 총 231명에 이른다. 뜻깊은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현재 한국에서 사전 교육은 이 프로그램의 초기 수혜자였던 UNIST의 박재영 교수가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 하지만 사토 교수는 변함없이 매년 한국의 사전 교육에 직접 참여하여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주고 있어, 그 깊은 애정과 헌신에 늘 감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운영되면서 프로그램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빡빡한 고난도 실험 일정과 긴장감 넘치는 발표 평가를 마친 직후, 곧바로 원자력 시설 견학까지 연속으로 소화하려다 보니 학생들의 체력적 부담이 크고 후반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를 극복하고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원자력협력재단에서 올해(2026년)부터 실험 교육과 일본 원자력 시설 연수를 두 개의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분리하여 시행하기로 했다. 이로써 소수 정예로 진행되는 실험 교육은 그 깊이와 내실을 더욱 다질 수 있게 되고, 시설 견학 프로그램에는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문을 넓혔다. 많은 우리의 젊은 인재들이 이웃 나라의 생생한 원자력 현장과 폐로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향후 국내 원자력 연구 및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주도적으로 모색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값진 계기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방사성 물질을 직접 다루는 핵주기 화학 분야는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만큼이나 인재 육성에 긴 안목과 끈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지난 17년간 도호쿠대학과 이어온 본 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히 단기 연수를 넘어,
한일 양국의 원자력계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고 시너지를 창출해 내는 모범적인 교육 협력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프로그램의 형태도 발전적으로 변화했지만, 원자력계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를 키워낸다는 근본적인 철학만큼은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사토 교수와 나의 손을 떠나 훌륭한 후배 교수들의 손에서 더욱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대한민국 원자력 핵주기 분야를 이끌어갈 든든한 인재를 길러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