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지금까지 무탄소 전원 공급은 수력과 원자력의 기여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10 ppm으로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130ppm 가량 증가했다. 만약 수력, 원자력, 태양광과 풍력이 모두 석탄화력이었다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보다 30ppm 가량 더 높았을 것이다. 수력이 16ppm 저감, 원자력이 12ppm 저감, 태양광과 풍력이 2ppm 저감에 기여하였다.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년 2ppm 씩 증가하고 있으니 이산화탄소 시계를 수력이 8년, 원자력이 6년, 태양광과 풍력이 1년씩 늦춰 놓은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 제한 목표인 450ppm에는 고작 40ppm 남았고,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남은 것이다. 매우 빠른 이산화탄소 감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원자력 없이는 이산화탄소 감축 속도전 불가능
2019년 현재 연간 전력생산량 기준으로 매년 수력은 0.5ppm, 원자력은 0.3ppm, 태양광과 풍력은 0.2ppm 정도 저감(석탄화력 대비)에 기여하고 있다. 매년 2ppm을 추가로 줄여야 대기 중 농도가 늘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산술적으로 현재 수력, 원자력, 태양광, 풍력의 기여를 추가로 2배씩 늘려야 가능하다. 즉 모두 현재의 3배로 늘려야 한다. 게다가 수력을 증설하는 것이 한계에 온 이상 원자력과 태양광 및 풍력을 대폭 늘리는 수밖에는 길이 없다. 탈탄소(전기 난방, 전기차 등)를 위해 전력수요가 현재 대비 2배로 늘어난다면 늘어나는 분량은 당연히 무탄소전원으로 해야 하니 원자력, 태양광, 풍력 모두 현재 대비 10배는 늘려야 가능할까 말까 하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현재 가장 빨리 확대되고 있는 태양광의 연간 발전량 증가속도도 1980년대 원자력 증가속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므로, 만약 원자력을 뺀다면 이산화탄소 대규모 고속 감축은 불가능하다. 참고로 UN의 1.5도 특별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2050년까지 원자력을 최대 6배로 늘려야 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원자력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원자력 없이는 해결책이 없다.

미국과 유럽 등은 원자력을 포함한 청정에너지로 대응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은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에 포함하여 무탄소 전원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35년 100% 청정전력 실현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및 탄소포획저장을 통해 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일본의 녹색성장 전략 및 중국의 신에너지 계획에서도 원자력의 규모와 비중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의 공동연구센터는 원자력이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큰 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유럽연합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기술적으로 원자력의 친환경성을 인정한 것이다. 유럽연합이 유럽 청정 전력의 1/4을 감당하고 있는 원자력을 중요한 탄소감축 수단으로 가져갈 것은 분명하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사용할 수 있는 청정전력은 우리에게 원자력이 유일
태양광과 풍력이 탄소배출은 없지만, 고유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특히 대규모로 보급될 경우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배터리 저장은 용량의 한계가 있고, 수소로 저장하는 것은 경제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수소생산과 저장 설비를 건설하고 하루 두세 시간 태양광 풍력 전기가 남을 때만 운영하는 것은 경제성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원자력과 결합하면 하루 24시간 운영할 수 있어 경제성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결국 태양광과 풍력의 고유 간헐성은 대형 및 중소형 모듈 원전의 유연운전과 수소를 포함한 대규모 에너지저장 기술의 결합으로 풀어야한다. 간헐성 재생에너지와 수소의 결합만으로는 에너지 경제, 환경, 안보상 미완이며, 여기에 원자력까지 결합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를 대비해 원전의 유연운전과 중소형 모듈원전 개발 등 기술적 숙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

계속운전, 건설 재개도 꼭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
미래 기술도 중요하지만, 현재 가진 자산을 잘 활용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안전성을 만족하는 원전의 계속운전과 건설이 중단된 신규원전의 건설재개는 안전성, 경제성, 안보성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다. 미국처럼 80년 운전은 아니더라도 최소 20년만 더 계속운전을 추진한다면 현존 원전에서 추가로 생산될 전력량만 약 400조원(한전 판매 단가 기준) 어치에 이른다. 1차 운영허가기간이 끝난 원전은 공짜나 다름없다. 환경성과 경제성을 모두 잡을 방법이다.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우리나라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항공모함 같다. 원자력을 뺀 항공모함으로 갈 것인가, 원자력을 포함한 항공모함으로 갈 것인가. 답은 자명해 보인다.

카이스트 신형원자로연구센터 소장 정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