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자국의 자연·인구·산업환경을 고려하여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은 참으로 어려운 도전과제여서 최상의 지식과 정보로 미래를 예측하면서 신중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대부분 국가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선진국들과는 달리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 중심 산업체계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누적 방출량이 전 세계 누적 방출량의 1% 남짓이어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고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여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제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2018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해온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정체 또는 추세를 보여온 주요 선진국보다 탄소중립 달성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2030년 NDC를 달성하려면 우리나라는 기준연도에서 연평균 4.17%씩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유럽연합(1.98%), 캐나다(2.19%), 미국(2.81%), 영국(2.81%) 등보다 훨씬 더 가파릅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 수준으로 미국(11%)이나 EU(14%)보다 크게 높고, 첨단 제조업의 높은 경쟁력으로 선진국에 막 들어섰습니다. 국가 경제를 훼손하지 않고 선진국의 두 배 속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현재 국내 무탄소 전기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경제성, 환경성, 에너지 안보 등에서 월등한 준국산 에너지인 원자력을 버리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력 공급에서 원자력 점유율은 2020년 29%에서 2050년에는 6.1~7.2%로 줄어드는 반면, 간헐성 재생에너지는 6% 수준에서 60.9~70.8%로 증가하고, 불확실성이 큰 무탄소 가스발전(수소·암모니아 발전)이 2050년 전기공급의 13.8~21.4%를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연간 2,700여만 톤의 수소를 공급해야 하는데, 80% 이상을 수입 수소에 의존할 계획입니다. 2030년 NDC에는 원자력, 석탄, LNG 발전량 점유율이 2020년에서 2030년까지 10년 동안 각각 29.0%→23.9%, 35.6%→21.8%, 26.4%→19.5%로 줄어드는 반면, 신재생 발전량은 6.6%에서 30.2%로 크게 증가시키는 대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60GW 이상 설치하는 것이나 2050년 태양광 설비를 EU 전체의 1.5배 수준으로 계획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없습니다. 상업화 가능성이 낮은 무탄소가스 발전량 166~279TWh는 현재의 원자력발전량보다도 큰 값입니다. 연간 수소 소요량 2,700여만톤 중에서 국내에서 공급하겠다는 500만톤을 태양광 발전을 이용한 수전해 방식으로 생산하려면 200GW 이상의 시설이 필요합니다. 매년 2천만 톤 이상의 청정수소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탈원전, 환경, 신재생에 편향된 분들 중심으로 구성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실현 가능성과 소요비용,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 등을 엄밀하게 평가하지 않고 내세우기 좋은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모한 계획을 추진하다가 중간에 좌초하면 그 피해를 온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데, 탄소중립을 위한 계획인지, 재생에너지를 위한 계획인지, 소수 집단의 승부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계획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형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원자력발전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현 정책으로는 전혀 길이 보이지 않은 탄소중립을 향해 비포장도로라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2030년까지 허가기간이 만료되는 10기 원전의 설비용량은 8.46GW로서, 발전량 기준으로 태양광 45GW 또는 육상풍력 29GW에 해당합니다. 안전성·경제성을 평가하고 필요시 설비를 보강하여 계속운전을 허용한다면, 2030년 NDC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원전과 SMR의 신규건설을 통해 전력공급의 30% 이상과 청정수소 공급의 50% 이상을 담당한다면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불안정성이나 전기품질 저하 문제를 크게 완화할 수 있습니다. 고립된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합리적 믹스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수소에너지의 적절한 보완 기능을 통해 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자력의 가치는 곧 드러나고 국민의 지지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 및 인력 인프라가 모두 무너진 다음에 원자력 정책을 전환하면 너무 늦습니다. 미국, 영국 등의 원자력 발전 경제성이 낮은 이유는 원전 건설의 장기간 중단으로 설비공급체계가 붕괴됐기 때문이며, 우리에게도 시간이 없습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시작으로 원전 산업체계를 다시 세워서 국내 건설 및 해외 수출을 통해 전 지구적인 탄소중립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필수적이며, 한국원자력학회 회원들의 적극적 역할이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백원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