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이제 인류 문명의 표준은 포노 사피엔스라고 할만하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미디어를 시청하고, 정보를 얻고, 물건을 사고, 음식을 사먹는 이 신인류는 전세계 시장 생태계를 모두 바꾸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쇼크가 인류를 덮쳤다. 감염 위험으로 인류는 강제로 생활공간을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혁명은 엄청난 속도로 가속중이다. after 코로나 시대의 출발점으로 기억될 2020년은 인류 표준 문명 전환의 원년으로 기록할만하다. 이미 스마트 폰 문명의 창조기업들은 세계 경제의 지형도를 바꿨다. 시가 총액 기준 세계 1위에서 7위 기업(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은 모두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 기업들의 시총합계는 무려 8,600조원(2020년 7월 1일 기준)에 이른다. 2018년 5월 5,000조원이었던 가치는 불과 2년만에 70% 이상 상승한 셈이다. 2020년에만 1,800조원 이상이 더 불어났다. after 코로나 시대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자본이 선택한 것이다. 기업의 주가는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성장 기대치를 반영한다. 제조업이 막강한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서도 네이버가 시총4위, 카카오가 시총 7위에 오르며 글로벌 시장 변화에 동참중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도 혁명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탈원전의 광풍으로 신규 원전 사업은 멈춰 섰고 이로 인해 원자력 산업 생태계의 붕괴까지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혁명적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 변화가 절실하다. 변화의 방향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서 길을 찾아야한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단순히 플랫폼 기업들이 선도하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아니다.
인류의 표준 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는 문명 교체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문, 방송이라는 대중 매체에 의해 생각을 지배받던 소비자들은 이제 매일 매일 자신의 선택으로 정보를 얻고 생각을 형성한다.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TV보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이 2배 이상 많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방송의 권력이 개인의 손끝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국민의 손 끝에 의한 선택이 곧 권력이 되는 시대다. 원자력 산업의 성패는 바로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공포심은 전세계를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다. 인류는 수많은 동영상을 SNS를 통해 확산하며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트라우마를 만들었으며 이것이 세계적인 탈원전 현상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 원전에도 이후 훨씬 강력한 안전규제가 마련되었고 이에 더 나아가 탈원전 선언까지 이르게 되었다. 탈원전의 출발이 국민의 트라우마에 따른 손끝의 선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원전 산업의 부활도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개선하여 증명하고 이를 국민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차근차근 진정성있게 바꿔 나가야 한다.

희망은 충분하다.
그동안 원전사고의 공포에 휩싸여 있던 국제사회는 차츰 신재생에너지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고 안전하기만 하다면 원전은 훌륭한 제로 에미션의 친환경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위기도 확산중이다. 우리나라도 원전 비율을 줄이자 화력발전이 급증중이다. 신재생이 기존 원전의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너무 많다는 것도 분명하다. 화력발전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탄소는 환경과 건강을 파괴하는 침묵의 암살자다. 피해가 심해질수록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위한 공청회때에도 토론 시작전에는 탈원전에 대한 의견이 많았으나 토론 후에는 원전 건설을 선택했다. 그만큼 합리적인 판단이 따라준다면 원전 산업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지금대로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면 기존의 기준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과학적, 기술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검증과정과 전문적인 기술적 프로세스도 국민과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해야한다. 과거 원자력 산업계는 국민이 몰라도 되는 것은 모르는 게 좋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모든 것이 공유되는 시대다. 기업 비밀이야 유지되야겠지만 안전문제를 가릴 수는 없다.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민과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시스템이 정착되어야한다. 신뢰가 형성되어야 기술도 의미를 갖게 된다.

원전산업이 필요한 지에 대한 선택권은 국민의 손 끝에 달려 있다.
국민들이 SNS를 통해 원전이 미래의 청정 에너지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퍼뜨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확신할 수 있게 하려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투명한 근거가 필요하다. 새로운 문명시대, 누구의 탓을 하거나 기술이 훌륭하다고 자랑하기 전에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근본적으로 무엇부터 바꿔 나가야할지 깊이 고민을 시작해야한다. 에너지 산업은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깊이 고민하고 제대로 가야하는 길이다.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최재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