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이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앞으로 지구가 맞이할 수많은 위기와 과제들이 특정 국가의 선도적인 역할에 기대어선 안 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력 미래 역시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합심해 연구와 정책을 실행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속해있는 동아시아는 원전 밀집 지역이다. 2019년 성균중국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의 24.2%(109기)와 건설 중인 원전의 32.7%(18기)가 한국과 중국,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동아시아에 전 세계 가동 원전의 절반에 달하는 200여개가 건설된다. 특히 기후변화 대처와 미세먼지 현상 해결을 위해 원전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은 이미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많은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 가장 많은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나라다. 당장 우리나라 서해 건너 해안선에만 무려 56기의 원전을 건설 중이다. 연평도와 스다오완(石島灣) 원전은 서울과 강릉 거리에 불과하다. 중국 산둥반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고작 사흘 만에 방사성 물질이 한국에 도달한다(스다오완의 경우 하루).

비단 서해에 면한 곳만이 문제는 아니다. 남중국해 주변 원전, 혹은 대만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바다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과는 관계없이 주변 국가가 계속 활발하게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만큼 동아시아 모두가 원전에 있어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모두가 원자력 안전에 있어서는 자국 문제만 거론할 뿐 실질적인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지난 2008년부터 ‘원자력 안전 고위규제자 연례회의(Top Regulators Meeting, TRM)’를 구성, 계속해 원전 안전 방안을 논의하고 사고 대비 합동방재 훈련을 시행하는 등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회의일 뿐 안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협력을 이루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은 2030년까지 110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해 세계 최대의 원전 대국으로 자리잡게 된다.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의 오염수 처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 영향에 대한 상호 검증이나, 주변 국가와의 정보공개에는 소극적이다.

TRM에서는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방재훈련을 실시할 뿐, 완벽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대응이나 연구, 보상 방안에 대해서는 충분치 않다.

앞서 말했듯 동아시아 국가에 위치한 원전들은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안전 연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중국과 일본, 대만과 지속적으로 실질적인 논의와 협력을 진행하여야 한다. “함께의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와 같은 4차산업혁명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안전 기술 연구에 있어서, 이 국가들이 머리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원전 고장을 예측해 사전에 진단하는 AI 시스템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 공유를 통해 이 시스템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도 있고, 안전사고 예방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도생에 골몰했던 국가들이 사실을 더욱 빨리 공개하고,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했다면,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각국 정부들은 협력을 시작했다. 미국 대학들은 조금 더 빨랐다. 주요 대학들은 `코로나19 기술 접근 지원체계(COVID-19 Technology Access Framework)`를 결성해 전 세계 기업에 코로나19 관련 기술과 지식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기술이전이나 지식재산이 미국 대학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임을 고려할 때 대단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원자력의 미래에도 이와 같은 초국가적인 협력이나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주변국이 중요한 전기 공급원으로서 원자력을 선택하고 있고, 또한 원전이 밀집되어있는 만큼 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동아시아 전체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에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는 그 절실함을 가지고, “함께” 대비하고,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국내 원자력 학계도 국가간 협력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와 국민, 나아가 전 세계의 안전한 미래를 지킬, 함께의 “힘”이 되어주리라 필자는 확신한다.

POSTECH 총장 김무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