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

그러나 현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 4차 산업시대의 물결 속에서 지난 60년간 국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원자력 역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모할 것을 요구 받고 있다. 대한민국 원자력 R&D 역사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 지금, 원자력연구원은 치열한 연구를 통해 축적해 온 우리의 기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 추진할 예정이다.

기술적 가치, 미래를 준비하는 자신감

대한민국 원자력의 역사 속에서 연구원은 희, 노, 애, 락의 순간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 전반에 걸쳐 빛나는 족적을 남겨왔다.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함께 태동한 대한민국 원자력의 시작은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우리나라의 상황만큼 험로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 입국(立國)이 목표였던 시절,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술력과 빈약하기 그지없는 인적·물적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우리 선배들은 소명의식을 갖고 밤낮 없이 연구에 매진하였다. 원자력 변방국이라는 국제사회의 편견을 이겨내야 했고, 연구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실패를 맛보며 낙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숱한 난관 속에서도 우리는 원자력 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 결과,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를 시작으로 국내 유일의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원전기술자립의 요체인 한국표준형원전 개발 등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내며 명실 공히 원자력 기술 자립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수출, 네덜란드 연구용원자로 개선사업 수주, 한-사우디 SMART 상용화 공동 추진 등을 통해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세계화에 성공하며, 당당히 원자력 기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듯 연구원과 산업회의가 함께 만들어간 원자력 60년의 성과는 오늘 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사회참여적 친환경 기술로의 변화

지난 날 눈부신 성과를 뒤로 하고, 원자력 기술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성과와 발전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던 전진적 관습에서 벗어나 ‘안전’, ‘혁신’ 등 그간 우리 사회가 조명하지 않았던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통해 새 시대가 요구하는 원자력의 새로운 역할을 다짐해야 할 때이다.

먼저, 원자력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과학기술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 시간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원자력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일치단결하여 단시간 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원자력 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국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함에 따라 원자력은 이제 정부와 대중이 요구하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한 R&D로의 재편을 모색해야만 할 때이다. 대한민국 원자력 연구개발의 새로운 출발점에 놓인 지금, 연구원은 안전 한국이라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분명히 인식하여 원전 발생 폐기물의 안전 처분과 시설 내진 성능 강화, 방사능 방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 등 원자력 안전 연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둘째, 사회현안 해결에 앞장서는 과학기술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 날 대한민국은 과거에는 경험한 적 없는 여러 사회적, 환경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날로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은 대표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기관의 맏형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선제적인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원자력 기술 연구의 최전선에 위치한 원자력계 모든 기관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가동 원전의 안전성을 최대치로 높임으로써 안전한 사회 구현에 노력하는 한편, 방사선 융·복합 기술을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생명공학 분야의 성과 창출에 앞장서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고 다듬어져 이어 온 우리의 기술적 가치를 사회 발전에 환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끝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는 진취적인 과학기술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 날 대변혁기를 맞이한 연구원에겐 6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보여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행보가 다시금 필요하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날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 해체 시장을 선점하고 기술 경쟁력의 국제적 우위를 지속 확보하기 위한 거시적인 계획을 수립 중이다.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사용후핵연료의 이송 및 처분에 필요한 요소 기술과 방사성폐기물의 안전 처리 기술 개발 등은 연구원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분야로 이를 위한 전담 조직 구성 및 인력 확보·배치에도 힘써오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기술적 수요가 예상되는 대양(大洋)과 우주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을 진행하고, 연구개발에 돌입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원자력이 지나온 60년은 개발을 통한 성장의 시기였다면 현재부터 펼쳐질 미래는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원자력 연구개발은 깨끗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안전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지속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 생활하는 때가 온다면 원자력이 인류에 주는 혜택이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박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