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의식주이다. 그리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수단은 에너지이다. 그러니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국가의 책무이다. 에너지에는 산업에 필요한 열을 제공하는 1차 에너지원과 이동수단을 위한 수송에너지와 전기 생산을 위한 전력원 등이 있다. 여기서 현재와 미래에 더욱 주목받고 사용처가 확장되는 에너지가 바로 전기이다. 그러니 전기를 생산하는 수단인 전력원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더욱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는 저탄소 에너지원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석탄과 석유, 가스같은 화석 에너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에너지원으로서 유용성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나라가 탄소제로 목표를 선언한 2050년 2060년이 되면 화석연료는 자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탄소제로 에너지로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있다. 저탄소에너지원이 주가 되는 현재와 미래에 국가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에너지원을 선택하여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고려나 이념이나 선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오직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남긴다.

독일은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 3기를 정지시키면서 탈원전 국가가 되었다. 경제성, 안정성, 환경친화성을 목표로 안전과 탄소중립을 위한다고 탈원전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2000년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녹색당의 정책을 반영하는 정치적 고려와 합의로 탈원전 정책이 채택된 것이다. 독일은 2000년 처음 제정한 재생에너지법(EEG)을 중심으로, 2010년 메르켈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Energiewende),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발표한 ‘에너지패키지(Energiepaket)’, 2022년에는 ‘부활절패키지(Osterpaket)’라는 에너지정책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2030년까지 총 전력수요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35년부터 전체 전력수요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재생에너지법(EEG)과 해상풍력에너지법(WindSeeG), 에너지생산기업규제법(EnWG) 등을 개정한 것이다.

반핵단체들은 탈원전 국가가 된 독일을 에너지 전환의 모범 국가로 여겨왔다. 그러나 독일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이 실제로 가져온 참담한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2023년말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9%를 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화력발전이다.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간헐성의 대체 전원은 자국의 풍부한 부존자원인 갈탄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가스를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이다. 독일의 갈탄 매장량은 약 727억톤으로, 이는 약 40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으로 자국내 갈탄을 연료로 화력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탄소배출도는 약 550 gCO2/kWh로, 원전 비중이 75%인 프랑스가 약 70 gCO2/kWh이니 거의 8배이다. 우리나라 450 gCO2/kWh보다 더 많다. 재생에너지 보조를 위한 부과금과 송전망 증설 비용 증가로 전기요금은 크게 상승하였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우리나라보다 3~5배 비싸고, 산업용은 약 2~3배 비싸다. 화력발전에 의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일 수 없어 국민 건강과 보건에 악영향만 늘어났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공급의 불안정성 증가와 대정전의 위험성은 높아졌고, 과잉 생산된 전력의 강제 수출은 주변국의 전력 계통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가스 발전을 하다 보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독일의 에너지 안보는 불안해졌다. 모든 것이 탈원전한 목적과 전혀 반대로 가는 결과가 나왔다.

독일의 산업관계자들은 에너지 및 기후 정책이 지나치게 의욕만 앞서는 조치라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독일산업연맹(BDI) 대표 Siegfried Russwurm 씨는 독일 에너지 정책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 독단적”이라며 탈원전 결정으로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독일이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고 말하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대비 및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정부로부터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독일 산업 전문가들은 2023년 폭스바겐의 신규 배터리 공장 미국건설과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의 중국 석유화학 공장 투자 등을 예로 들며 많은 독일 기업이 자국이 아닌 해외로 떠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이 2035년에 재생에너지로 100%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결과가 오히려 목적에 어긋난다면 탈원전의 에너지 정책을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결정으로 나온 에너지 정책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제 곧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11차 전기본)이 발표된다. 에너지 정책은 미래지향적인 것이라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예측을 근거로 정책 방향을 세우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추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11차 전기본에는 미래 에너지 수급에 대한 전망, 인구 변화, 경제성장, 산업 변화를 고려하여 에너지 공급의 안전성, 국민의 수용성, 효율성, 탄소중립 등 우리나라에 환경과 여건에 적합한 에너지 정책이 담길 것이다. 특히 무탄소 전력원인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의 확대와 신규 원전의 도입이 들어가는 합리적인 전력원 구성이 반영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제조업 기반의 전력 다소비 국가인 우리나라의 특성에 따라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저부하로서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만약 반핵단체나 일부 국민이 원전에 대한 불안을 문제 삼는다면 역사상 중대사고를 경험한 미국, 소련, 일본이 왜 여전히 원자력을 유지 확대하는 정책을 고수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산유국인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원자력의 종주국중 하나인 영국이 탈원전에서 다시 원전 건설로 돌아선 배경을 헤아려야 한다. 탈원전을 추진한 독일, 원전을 주전력원으로 삼고있는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   이 기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