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원전, ‘헤어질 결심’의 메타포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정동욱 교수

원전 영화라면 대개는 재난 영화이거나 테러 이야기다. 영화 ‘판도라’도 그렇고, 그보다 훨씬 전에 나온 ‘차이나 신드롬’이 그렇다. ‘헤어질 결심’은 멜로 영화다. 물론 판도라나 차이나 신드롬은 원전이 직접적인 소재이고 ‘헤어질 결심’은 한조각 배경이기는 하다. ‘헤어질 결심’은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줬다.

영화는 카메라가 방의 풍경을 훝으며 시작한다 (박해일 부부의 집이다). 방 벽에 붙여둔 신문기사를 카메라가 스친다. ‘핵인싸, 엄마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원전 완전 안전 하다’라는 문구는 해준(박해일 역)의 부인 정안(이정현 역)이 서래(탕웨이 역)를 만났을 때 다시 나온다. 해준은 강력계 형사이고 서래는 암반 등반 중 추락사한 사망자의 미망인이다. 정안은 해준의 부인으로 이포라는 지역(부산-고리와 유사한 설정이다)에 소재한 이포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한다. 정안은 원전 조종사다. 영화에 잠깐 원전 주제어실이 보인다. APR1400의 주제어실 모양이다. 형사 부인의 직업으로 원전 조종사는 묘하다. 원전 조종사는 과학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형사도 마찬가지다. 수사는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죽음을 밝히고 범인을 잡는데 감정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원전 조종사도 어떤 상황에서든 냉정을 잃지 않고 판단해야 한다. 해준과 정안은 형사와 원전조종사로 이성적 인물이다. 반면에 서래는 요양사다. 요양사는 감정의 직업이다. 환자와의 공감능력이 직업의 바탕이다. 영화는 이들 인물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DNA가 이중 나선으로 뒤엉키는 단면을 보여준다.

정안이 근무하는 원전은 이포원자력발전소이다. 일년 내내 안개에 쌓여 있고 해를 보기 어려운 지역으로 소개된다. 안개는 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를 대표한다. 영화의 주제가도 정훈희의 안개다. 안개로 가려진 이포에서는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없다. 오로지 원전만이 이포가 필요로하는 에너지를 댈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관계도 안개와 같다. 안개 속에서 주인공들은 헤어질 결심을 한다. 헤어질 결심의 끝은 사라짐이다. 마치 안개가 사라지듯이...

’사실, 원전 완전 안전하잖아요‘, 해준이 이포 시장에서 서래를 만났을 때 한 말이다. 정안과 해준은 오랜만에 이포 시장을 걷는다. 이때 서래와 그의 새로운 남편을 만난다. 이포에 왜 왔냐는 질문에 서래의 남편이 서래가 중국인 관광가이드로 일할 것이고 중국에서 원전 사고에 대한 드라마가 인기라 관광객들에게 원전을 보여주기 위해 답사하러 왔다는 설명에 해준이 대꾸한 말이다. 드라마의 소재로서의 원전과 사실로서의 원전을 대비 시켜주는 장면이다. 한편 해준과 서래의 안개 같은 모호한 관계 속에 ’사실, 우리 완전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 속의 원전은 안개 속의 원전이다. 원전은 안개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낸다. 사람이건 원전이건 안개의 음습함 속에서는 ’사실 완전 안전하다‘는 믿음이 없다면 ’헤어질 결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원자력과 관련된 용어로 주제를 관통한다. ’붕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방사선 붕괴는 핵종이 다른 핵종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이 발생해서 방사선 붕괴라고 한다, 영화에서 해준이 서래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붕괴‘됐다고 표현한다. ’붕괴‘는 무너진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느낌은 존재가 사라지는 ’멸망‘에 가깝다. 하지만 방사선 붕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붕괴는 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헤어질 결심‘은 어려운 영화다. 두시간 내내 집중해야 하고, 대사 하나 하나를 곱씹어야 한다. 두 주인공, 박해일과 탕웨이 사이의 가까이 갈래야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렇다고 멀리 갈 수도 없는 묘한 긴장의 끈도 쉽지 않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현실과 상상이 겹쳐 집중해야만 쫒아 갈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집중이 피곤을 더하기 보다는 잠시나마 일상을 잊게 해준다. 오늘도 피곤을 떨치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 카페인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면, 이 영화는 쓰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에스프레소와 같이 한모금 마셔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