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였으니 원자력계로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한해이다. 역사적으로는 일제의 강점에 맞서 독립을 외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원전 건설과 운영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원자력계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원전의 안전에 보다 많은 질문을 하게 됐고 사용후 핵연료로 대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관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원자력계는 원전 건설과 운영에 집중하면서 방폐물 특성, 고준위 방폐물 처리 및 처분, 원전 해체기술 등 후행 핵주기에 대해서는 기술개발이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부산, 울산, 경주 등의 지자체들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원전해체연구소도 이제 시작을 알리는 단계다. 원자력산업 생태계의 중심이 선행 핵주기에서 후행 핵주기로 이동하고 있으나 대학이나 연구원에서는 기술개발 및 연구가 아직 원전 건설과 운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후행 핵주기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기술 수준과 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1978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원전을 건설해 오면서 사실상 고준위 방폐물에 대한 대책은 계속 미루어 왔다. 소위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계속 짓는다는 비판에 대한 변명이 궁색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은 지난 2005년 경주에 부지를 마련하고 2014년 10만 드럼 규모의 1단계 동굴처분시설을 준공해 걱정을 덜었지만 아직 중저준위 방폐물도 안전성에 대한 신뢰 확보와 원전 해체 폐기물에 대한 처리 및 처분을 준비하여야 하는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원전 해체 등에 대비해 2단계 표층 처분시설을 건설해야 하고 3단계 매립형 처분시설도 적기에 준비해야 한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해체가 시작되면 엄청난 양의 방폐물이 발생한다. 방폐물의 부피는 처분비용으로 직결된다. 방폐물의 부피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처분하는 문제는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많은 고민과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 지금까지 방폐물 처분이 원전의 운영 폐기물 중심의 정형화된 처분의 과정이었다면 다가올 해체폐기물 처분은 다양한 형태와 핵종을 가진 난제이다. 원전 해체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해체 폐기물에 대한 이해와 처리 및 처분에 대한 기술적 준비가 철저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고준위방폐물에 대해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의 후행 핵주기분야 기술 선도국들은 이미 지하연구시설의 운영단계를 지나 실제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착수할 정도로 많은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관련기술은 사실상 낮고 연구시설,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방안을 찾고 관련기술을 개발하는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임시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처리하는 다양한 기술적 과제는 인수기준을 비롯해 아직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구처분을 준비하기 위한 지하연구시설의 건설은 아직 시작도 못했고 다른 기술 선도국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정책적으로 정부가 재검토 공론화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지만 재검토의 방법과 절차, 참여범위 등에서 이해관계자, 지역별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히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2021년 포화되는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더 이상 저장할 곳이 없어 원전 가동을 중지해야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되겠지’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은 이제 버려야 한다. 시간이 저절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원자력으로 전기의 혜택을 누린 우리 세대가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모든 방폐물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탈(脫)원전이나 친(親)원전에 관계없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방폐물은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중저준위 방폐물은 물론 고준위 방폐물, 원전해체 등의 후행 핵주기 분야에 대한 안전한 관리기술 개발과 전문인력 양성에 원자력계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국내 유일의 방폐물관리 전담기관으로서 중저준위 방폐장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수용성 확보는 물론 원전해체와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 및 영구처분에 대비한 시설 확충과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단은 고준위 방폐물 관련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기술선도국의 전담기관과 기술, 인적교류를 확대하고 있으며,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본부에 직원을 파견해 고준위 방폐물 처분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원자력학회, 방폐물학회 등 국내 전문가, 대학 등과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및 원전해체 인력 양성, 방사성 동위원소 폐기물 기술정보 교류, 대국민 이해증진 등의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있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론화 위원회의 원활한 운영과 정책재검토가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유기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해 사회적 수용성 확보 노력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공단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원자력계 모두가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와 처분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선정과 건설과정에서 경험했지만 방사성 폐기물 관리는 기술적 안전성과 함께 정치, 사회, 행정적으로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는 복잡한 사안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국민들에게 과학, 기술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기술적 신뢰 없는 방폐물, 원자력의 안전성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자력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원전의 안전과 함께 안전한 원전해체와 방폐물 관리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후행 핵주기에 대한 기술력의 확보는 물론 풍부한 전문가의 양성이 필수적이다.